■ 악수로 시작해 악수 없이 끝난 美 대선 TV 토론회

해리스 '창' VS 트럼프 '방패'...예상 밖 모양새 연출
트럼프 "역대 최고" 자평에 해리스 "내가 승자" 자축
美 시청자 63% "해리스 승리" TV토론 '트럼프 판정패'
트럼프 "그녀는 이스라엘 혐오" 해리스 "독재자와 친해"

미국 대선 TV 토론. /연합
미국 대선 TV 토론. /연합

10일 오후 9시(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국립헌법센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부통령이 첫 대선 TV 토론을 벌였다.

이번 TV 토론의 쟁점은 경제 정책, 이민자 유입, 낙태 문제 등이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집권할 당시 부자와 대기업에만 세제 혜택을제공했다고 짚으면서 자신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됐다"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집권 당시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미국 경제 상황을 고려해 정부 지출을 증가시키면서 세금은 감면해주는 다소 독특한 경제 정책을 펼쳤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카드를 꺼냈다. 본인이 대(對)중국 관세를 부과했을 땐 지금과 같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없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해리스는 역대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이 나쁘게 만든 끔찍한 경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면서 현 행정부 실정에 대한 공동 책임론을 제기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중 금리 인하를 예고한 가운데 미국 물가상승률은 2%대로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미국 경제의 연착륙 성공 가능성을 35~40% 정도로 본다"라며 "미국이 고물가 속에 경기 침체가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마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히는 등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이민자 문제는 토론의 열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을 5개월 여 앞둔 지난 6월 남부 국경을 통해 밀입국하는 이민자를 겨냥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경제 문제와 불법 이민자 문제가 대선 최대 이슈로 떠오르자 승부수를 빼든 것이다. 여론조사업체 갤럽에 따르면 이민자 문제가 유권자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24년 만에 처음이다.

트럼프는 경제 문제로 시작된 화두를 자연스럽게 이민 문제로 돌렸다. 이민 문제는 현재 행정부의 취약점 중 하나로 꼽힌다. 트럼프는 현재의 인플레이션 상황 등을 거론하면서 "수백만 명이 미국에 들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민자들의 미국 유입을 꼬집은 것이다. 해리스 후보와 바이든 대통령이 이민자들의 입국을 허용한 탓에 이민자들이 미국의 도시와 건물을 장악했다고도  역설했다.

트럼프 후보는 "이민자들이 미국을 파괴하고 있다"라며 "위험하고 범죄성 측면에서 최고 수준인 만큼 몰아내야 한다"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이민자들이 개, 고양이를 잡아먹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민자가 유입된 마을에서는 부끄러워 말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민자들은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라며 "그들은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반려동물을 먹는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해리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황당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리스는 트럼프의 해당 발언이 끝나자 "이런 종류의 수사법을 들을 때 실제 미국인에 영향을 주는 의제는 다뤄지지 않는다"라며 "이번 선거에서 선택지는 명확하다"라고 강조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4건의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것과 관련해 "경제사범, 형사사범, 선거개입 그리고 성폭력으로 기소가 되고 유죄 평결을 받은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며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과 자격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집권 시절 함께 일한 각료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다고도 지적했다.

낙태 문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트럼프는 앞서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을 뒤집는 결정으로 낙태권을 폐기한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중 보수성향 3인을 자신이 임명해 왔다고 강조해오다 최근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해리스가 이날 토론에서 트럼프를 향해 "재집권 시 낙태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주장하자 트럼프는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는 또 자신의 부통령 후보(러닝메이트)인 J.D. 밴스 상원의원이 ‘트럼프가 낙태금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선 "밴스와 이 사안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주요 쟁점에 대한 토론 외에도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데 집중했다. 해리스는 ‘프로젝트 2025’를 언급하면서 트럼프를 공격했다. 프로젝트 2025는 미국 보수주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추진하는 미국 정부 개편 계획으로, 일종의 우파 정책 제안집이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행정부를 우파 성향으로 대거 개편하고 개신교 근본주의적 가치를 사회에 주입하는 것 등 급진적인 개혁안을 골자로 하고 있어 미국 정치사회계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해리스가 "트럼프는 프로젝트 2025라는 위험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공격하자 트럼프는 "나는 프로젝트 2025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읽지도 않았다"며 "그리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100분간 이어진 이날 토론에 대해 외신의 반응도 엇갈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토론 전반적으로 팽팽한 선거 구도를 보이면서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녹아웃(knockout) 타격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 캠프의 이날 토론 전략은 트럼프의 화를 촉발하는 것"이었다며 "그 점에서 해리스는 크게 성공했다"라고 보도했다. CNN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도 "해리스가 미끼를 던지면 트럼프가 모두 물었다"라며 "트럼프를 짜증나게 만든 듯 보였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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