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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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최근 수도권의 집값 상승세가 단기간 내 진정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내년 이후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크다고 평가하면서 부동산 시장 과열이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같은 상황은 가계대출 급증을 불러 가계부채를 눈덩이처럼 키울 공산이 높다.

오는 10월 11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딘 내수 회복세는 물론 고금리로 고통받는 취약 차주가 늘어난 데다 물가 안정으로 통화긴축을 완화할 여건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리 인하는 집값 상승세를 부추겨 가계부채 증가세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행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높아 부동산 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금리가 주택가격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은행의 10월 기준금리 인하도 오리무중인 상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지난달 22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최근 주택시장·가계대출 상황에 대한 평가 및 시사점’을 보고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수도권 주택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가계대출 증가세도 확대되면서 소득 등 펀더멘털과 괴리되는 정도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조정 과정에서 금융과 경기 변동성을 키울 수 있고, 소비와 성장도 구조적으로 제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통위원들은 이 같은 한국은행의 보고에 대해 "통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집값 상승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에 대해서는 금통위원 전원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금리를 내리면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금리 인하가 주택가격 상승의 촉매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금통위원은 "청년층은 주택가격이 상승할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 수 있는데, 이것이 저출생 등으로 이어져 우리나라에 필요한 구조개혁을 지연시킨다"며 "통화정책 수행 때 주택시장을 비중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계부채 증가세는 기준금리 경로에 따라 유의미한 패턴을 나타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1.50%로 낮췄던 2014년 3분기∼2016년 1분기, 코로나19 사태의 충격 완화를 위해 기준금리를 한 번에 1.25%에서 0.75%로 내렸던 2020년에도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빨랐다.

국토연구원이 주택가격 결정 요인의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기준금리의 영향이 60.7%로 가장 컸다. 이어 대출 규제 19.7%, 주택공급 8.5%, 인구구조 8.5% 등의 순이었다. 주택거래 활성화는 매수자의 자금 여력에 달려 있고, 자금 여력은 금리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역시 2011∼2016년의 주택가격 상승에는 금리 하락이 가계소득, 주택공급, 대출 규제보다 영향을 크게 줬다며 주택가격이 1% 오를 때 주택담보대출은 3.1% 증가하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국제기구의 경고도 나왔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발표한 정례 보고서를 통해 2000년대 초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대부분의 신흥국에서 민간신용이 큰 폭으로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지난해 말 222.7%에 달해 100%선을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다. 가계부채가 100.5%, 기업부채가 122.3%다.

민간신용 증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채가 늘면서 자금조달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실물자산이나 교육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서 성장에 기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선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부채와 성장의 관계가 처음에는 정비례하다 어느 순간 꼭짓점을 찍고 반비례로 돌아서는 ‘역 U자형’ 곡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로 주택 수요가 감소하면서 어느 정도 집값과 가계부채의 상승세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대출 규제가 단시일 내 가시적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출 규제에 빈틈이 많고 시장 심리가 부동산 추가 상승에 무게를 두고 있어 집값 상승 기대감을 꺾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10월 기준금리 결정도 막판까지 안갯속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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