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국정교과서 쟁점으로 시끄러울 때, 문화체육관광부 여론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정부의 국정교과서안(案)에 대해 짧게 의견을 달라는 주문이었다.‘북녘에 추파를 보내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행태가 불쾌하지만, 정부쪽 준비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이런 식으로 순진하게 대처하면 자칫 정권이 무너질 빌미가 되지 않을까 불안하다’ 정도로 써서 보냈다. 여론과장이 다시 전화를 했다. "뉴 라이트의 이 아무개 교수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그 무렵 교수회에서 단체 메일이 왔다. ‘국정교과서 반대 성명을 냈다’며 ‘성명서’를 첨부했다. 성
11개월째 이어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휴전이 가능할까. 일단 휴전 협상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상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권력 교체기에 접어든 중재자 미국이 영향력이나 압력을 행사하지 못해 휴전 협상 타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지난 2일 이스라엘 인질 시신 6구가 가자지구 내 터널에서 수습된 것과 관련, 미국은 조속한 협상 타결을 위해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수십 명의 인질이 여전히 가자지구에 있으며 그들을 집으로 데려올 합의를 기다리고 있다"며 "양측간 휴전 협상의 매듭을
‘The buck stops here.’ 2차 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집무실 책상 명패에 적힌 글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다.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킬 것인가 연합군의 더 큰 희생을 막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트루만은 원폭 사용을 결단한다.‘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라는 찬송가 구절처럼 민족뿐 아니라 개인도 살다 보면 결단해야 할 때가 많다. 아침에 더 자고 싶은데 일어나기, 피곤해도 운동 나가기 등 매일 사소한 결단을 한다. 중요한 결단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결단은 목표를 세
한국 좌파와 중국공산당의 ‘검은 거래’를 지난주 이 지면에서 언급했더니 파장이 엉뚱한 쪽으로 번지는 중이다. 뜻밖에도 연세대 쪽으로 불똥이 튕긴 것이다. ‘CCP(중국공산당) 아웃’과 공자학원 실체 알리기 운동본부(대표 한민호)는 지난 4일 ‘연세대학교는 중국공산당의 숙주가 되려는가?’란 불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연세대는 2013년에 공자학원을 유치했고, 2019년에는 중국 차하얼학회와 함께 연세-차하얼연구소를 설치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서 문제는 차하얼학회란 단체의 정체다. 중국공산당이 공공외교라는 이름으로 통일
남북한에 제목이 같은 노래가 있다. ‘임진강’이다. 임진강은 분단의 비극과 통일 염원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필자는 임진강 하면 흐르는 물보다 먼저 연상되는 것이 철책, 벌겋게 녹슨 철로, 망향제를 지내는 임진각, 오두산 통일전망대다. 임진강을 소재로 삼은 노래가 나오는 건 남한이나 북한이나 당연하다.문제는 한반도에 두 개의 임진강이 존재하는 것이다. 남북에서 각각 만들어진 가요 ‘임진강’이 그렇다. 북한 ‘임진강’은 분단의 아픔과 남한에 고향을 둔 이남 출신들의 소망, 기어이 미제를 몰아내고 통일을 실현해 고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
서울시의회 앞 화단에는 ‘부민관 폭파 의거터’ 표지석이 있다. 1945년 7월 24일 애국청년 조문기·류만수·강윤국이 친일파 박춘금(朴春琴) 일당의 친일 연설 도중 연단을 폭파했던 자리다.박춘금은 무식하고 거칠었으나, 영리했다. 일본인 술집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판에 뛰어들었다. 도쿄에서 조선인 노동자 합숙소를 만들고 실비 진료체계까지 갖추었다.1924년 간토지진으로 조선인이 희생되는 참극이 일어나자 자신의 노동자 조직을 동원하여 희생자 처리를 도모했다. 동아일보가 모금한 재일동포 위문금을 내놓으라고 인촌 김
지난 7월 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발생한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암살 관련, 이란은 이스라엘을 암살 배후로 지목하고 철저한 보복을 다짐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응이 없다. 보복 공격은 물 건너간 것일까?암살 사건 직후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최고국가안보회의를 긴급 소집해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이란혁명수비대 고위 지휘관, 정예 쿠드스군 총사령관 등이 모두 참석했다. 하메네이는 "공화국 영토에서 발생한 쓰라린 사건과 관련해 그의 피값을 치르는 것을 우리의 임무로 여겨야 한다"며
얼마 전 차안에서 여권 갱신 이야기를 하는데 듣고 있던 딸이 한마디 했다. "여권 유효기간이 10년이라면 아빠는 몇 번만 갱신하면 인생 끝이네." 웃고 지나갔다.인생을 숫자로 나타내면 단출하다. 유효기간이 10년인 여권은 갓난아기 때부터 만들어도 갱신 횟수가 10번 이내다.집은 대표적인 장기자산이다. 보통 사람이 집을 사고파는 건 몇 번뿐이다. 어릴 때 경찰인 아버지를 따라 2년마다 이사 다녔지만 독립해서는 네 번 이사했다. 한두 번 더 할 수도 있겠다.냉장고나 텔레비전 같은 대형가전제품은 품질이 좋아 고장이 잘 안 난다. 더 큰
드디어 꼬리가 밟힌 걸까? 국내 좌파와 중국공산당 사이의 커넥션 말이다. 구체적으로 2016년 말, 2017년 초 권력 변동기의 국내 내정과 대선에 중국이 어떤 개입을 했는지가 관건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등장 과정에서 중국이 배후에서 벌인 전천후의 ‘더러운 전쟁’인 이른바 초한전(超限戰)의 구체적 사례로도 지목된다.무슨 얘긴가?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중국의 한 차관급 인사가 차기 대선 유력주자로 떠오르던 문재인에게 대선자금 지원 의사를 전달했다는 구체적 폭로가 나온 것이다. 중국 전문가인 김상순 북경대 국
필자가 북한 보위부 옥살이할 때 옆 감방에 나이 60된 여성 수감자가 있었다. 기독교를 믿은 죄였다. 그 여성에 대한 핍박은 특별히 혹독했다.그 여성은 간부 자녀들을 돌보는 유치원 원장을 지낸 오랜 열성 노동당원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 탈북해 중국 연변에 체류하던 중 기독교를 접했다. 인간을 신으로 섬기는 북한에 다시 돌아가기를 포기한 그는 남한행을 시도하다 공안에 잡혀 북송됐다.보위부원들은 반성하라며 괴롭혔으나 그 여인은 오히려 "당신들도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며 믿음을 굽히지 않아 더 핍박을 자초했다. 걸핏하면
교보문구 매대(賣臺)에 긴 안내문이 붙었다. 요약하면, 지난 15일 출간된 판매에 불만인 독자는 간행물윤리위원회에 유해도서로 신고하거나, 법원에 판매금지가처분신청을 하시라. 그 위로 출판사의 선전 문구가 화려하다. ‘백범 김구라는 거대신화의 탈신화(脫神話)에 도전하다! 테러리스트 김구를 정조준하다! 시대의 금기를 건드리는 문제작! ‘테러리스트’와 ‘김구’라는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적 보고서!’이인영 장관 후보가 김구를 국부라고 추켜세운 날 를 다시 샀다. 민비 시해의 원수를 갚느라 일본 장교 쓰치다
한국계 교토국제고(京都國際高) 야구부가 여름 고시엔 대회(제106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에서 기적을 창조했다. 필자는 고교야구대회와 야구만화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던, 1970년대 말부터 고시엔의 명성을 들었다. 이번에 교토국제고의 기적 때문에 다시 살펴봤다.한국 고교야구의 인기는 시들하지만 일본은 여전하다. 단적으로 한국의 고교 야구부는 95개인데 일본은 3800개 정도다. 이 많은 팀 중에서 47개 광역(都道府縣)예선을 거쳐 선발된 49개 팀이 고시엔 본선 무대에 오를 수 있다. 고시엔 구장은 오사카부 서쪽 효고현(
첫 도입된 필리핀 가사도우미에 대한 수요의 배경에는 혹시 자녀 영어교육에 도움이 될까 하는 기대도 크단다. 그게 요즘 서울 강남의 분위기라는데, 기막힌 건 기저귀보다 영어 알파벳을 먼저 떼는 아기들 얘기다. 서울 일부엔 영어유치원 2·3세반이 있다는 것이고, 여기 들어가려고 별도 과외도 받는다.그런 게 어제오늘만의 풍속은 아니겠지만, 얼마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통계는 한국의 또 따른 측면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싱가포르에 둥지를 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기업의 아시아태평양본부는 무려 5000개다. 서울은 달랑 100개 이하. 홍콩(
북한에는 유치원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학생용으로 출판되는 신문·잡지들이 있다. 연령대별 특성에 맞게 다양하게 출판된다.월간잡지로는 유치원 , 소학교 , 중고등학교 과 , 대학에는 이 있다. 신문은 소학교에 소년신문, 중고등에 새날신문, 대학은 청년전위 및 자체 학보가 있다. 청년전위는 대학생뿐 아니라 모든 청년이 다 보는 신문으로 노동신문, 조선인민군과 함께 가장 중시되는 매체다. 학생 문예지로는 이 있다.그런데 누구나 다 차례지는 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종이
광복회 홈페이지에 올랐다는 ‘뉴 라이트 감별법’이 인터넷을 떠돈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자나 단체’는 뉴 라이트라며 서슬이 퍼렇다.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이라 부르든 건국 대통령이라 부르든 시민의 판단이다. 1948년 8월 15일에 나라가 섰으니 그 날은 당연히 ‘건국절’이다. 그런데 관례대로 ‘광복절’이라 부르겠다면 그것도 좋다. 일제시대에 고종도 순종도 일본 황공족에 한 자리씩 걸치고 연금도 챙겼으니 백성의 국
아내랑 낯선 산길이나 숲길을 걷다가 알았다. 바라보는 곳이 나와 많이 달랐다. 아내의 시선은 주로 길섶에 핀 풀·꽃·잎·열매 등에 가 있었고, 내 시선은 주변 지형과 풍광에 가 있었다. 마치 되돌아갈 때 길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처럼.두 사람의 시선 차이는 창조주가 만든 섭리(攝理)거나, 수십만 년에 걸친 남녀 분업이 만든 본능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아내의 시선은 주변 땅에서 먹거리를 구하는 채집자의 본능이라면, 나의 시선은 사냥꾼의 본능이다. 그런 점에서 아내에게는 내가 장님 혹은 앉은뱅이고, 나에게는 아내가 그렇다. 그래서 부부가
영화 ‘어바웃타임’은 시간이동 능력이 있는 남자가 주인공인 로맨틱 코미디다. 주인공 집안의 남자들은 21세가 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데, 자신이 기억하는 시절의 그 상황으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주인공은 현재 상황에 후회가 생기면 과거로 간다. 그러나 인생을 다시 살아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마침내 주인공은 시간여행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현재를 사랑하고 하루를 값지게 살기로 한다. 영화는 인생에서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 현재에 충실하라고 알려준다.후회는 과거의 선택에 따른 현재의 결과가 불만족스러울 때 생긴다. 선
이렇게 어수선한 광복절은 또 처음이었다. 광복회장 이종찬의 몽니로 시작된 정치권 논란이야 그렇다쳐도 민간부문까지 소동이 번졌다.한국프로야구에서 일부 팬의 반대로 두산 베어스 소속 일본 투수 시라카와 게이쇼가 그날 선발투수로 등판하지 못했던 것부터 어이없다. 그날 새벽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내보낸 KBS가 끝내 사과했던 것도 뒷맛 씁쓸했다.이런 반일 소동의 배경에는 식민잔재 청산이라는 맹렬한 민족주의 정서가 작동한다. 안타깝고 시대착오적 열등감의 발로가 아닐 수 없는데, 그날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를 다시 읽어보자. 경축사에는
광복절은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광복 또는 독립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북한 역시 8·15는 국경일이다. 다만 광복절이 아니라 조국해방기념일로 부르다가 최근에 광복절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남북이 따로 없는 유일한 국경일이고 한편으로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날이기에, 남북 간 통일을 향한 회담이나 선언이 이루어지는 계기로 활용된다.분명히 민족 공동의 명절이지만 8·15의 의미가 남북이 꼭 일치한 건 아니다. 남한은 1948년 8월 15일에 정부수립을 선포함으로써 8·15는 광복과 건국의 중첩적 의미를 지닌 날이 되었다. 반면 북한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협회에 대한 거친 불만·분노 표출은 복잡미묘한 사건이다. 부부(夫婦) 갈등, 부자·모녀 갈등, 세대 갈등처럼 간단히 선악으로 재단하기 어렵다.인간은 원래 자신이 준 것은 잘 기억해도 받은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이 받은 설움은 돌에 새기고, 자신이 받은 은혜는 물에 새긴다. 앞선 세대의 경험과 요구·기대가 만든 가치관은 뒷세대에 잘 전승되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과 발전이 일어난다.인간은 복잡미묘한 사건의 본질을 빠르게 파악하기 위해 프레임을 활용한다. 많은 사람이 이 사건을 선수에 대한 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