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
도명학

필자가 북한 보위부 옥살이할 때 옆 감방에 나이 60된 여성 수감자가 있었다. 기독교를 믿은 죄였다. 그 여성에 대한 핍박은 특별히 혹독했다.

그 여성은 간부 자녀들을 돌보는 유치원 원장을 지낸 오랜 열성 노동당원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 탈북해 중국 연변에 체류하던 중 기독교를 접했다. 인간을 신으로 섬기는 북한에 다시 돌아가기를 포기한 그는 남한행을 시도하다 공안에 잡혀 북송됐다.

보위부원들은 반성하라며 괴롭혔으나 그 여인은 오히려 "당신들도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며 믿음을 굽히지 않아 더 핍박을 자초했다. 걸핏하면 굶기고 잠 안 재우고 벌을 세웠다. 차가운 바닥에 뼈만 앙상한 몸으로 장시간 앉혀 놓아 엉덩이가 곪고 치질이 심해 피를 많이 흘렸다. 얼마 못 가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어느 날 악착같기로 소문난 보위부원이 약을 가지고 나타나 "이년아, 죽겠으면 빨리 죽어라. 그렇게 믿는 하나님인지 뭔지 하는 놈이 널 구원해 준다더니 왜 그 지경이야. 살고 싶으면 이제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말해봐. 그러면 이 약 주지"했다. 하지만 여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겠으면 말지 하나님을 욕하진 마세요. 난 그 약 못 먹어도 좋고 이대로 주님 곁에 가면 됩니다"라고 당당히 거절했다. 필자는 그때 종교를 믿으면 저렇게 미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며칠 후 그는 정치범수용소 이송 중 죽음을 맞았다. 전날 밤 보위원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하자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제 마음이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지금 원수도 사랑하라는 그분의 음성이 들립니다. 훗날에라도 꼭 예수님 믿으세요. 그래야 복 받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설사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해도 무정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됐다. 정말로 하나님이 있다면 구원해 주지, 나 같으면 그런 하나님은 있어도 안 믿어.

그 후에도 예수 믿은 죄로 들어온 탈북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기독교를 접촉했다고 하면 더 곤욕을 치르는 그들을 보면서 필자는 참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왜 있지도 않은 하나님한테 빠져 신세 망치나 했다.

그런데 수감생활이 길어지면서 점차 다른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다. 노동당은 왜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핵무장한 강적이라도 상대하듯 악을 쓰며 반대하고 핍박할까. 하나님이 없으면 그만이지 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예민할까. 누가 믿든지 말든지 무시하면 될 것을. 그게 참 이상했다. 그 의문이 탈북 후 필자를 교회로 떠밀었다. 허황한 신을 믿는 ‘머저리’가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 궁금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날부터 필자도 머저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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