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2000년대 초반 전교조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다. 전교조 전북지부 통일위원회는 학생들을 데리고 지리산 빨치산의 투쟁 거점을 찾아 강연과 기념식을 가졌다. 경남지부 산청지회에서는 아예 빨치산 출신 장기수를 대동하고 학생들과 지리산 역사 기행을 하기도 했다.

기행 후기에서 교사들은 빨치산을 ‘운동사 선배’라고 칭하면서 그들의 삶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자평했다. 이 교사들 빨치산을 무슨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체력단련 같은 거 했던 사람들로 아는 모양이다. 빨치산이 혹한에 숙영하는 법 같은 거 한 번도 들어보시지 못한 모양이다.

남부군 스타일이란 게 있다. 숙영지가 정해지면 거기에 길게 골을 파고 모닥불을 피운 뒤 둘러앉아 옷과 발싸개를 말린다. 다음에는 커다란 돌을 주워다가 불에 달군다. 이게 그날의 난방이다. 마지막으로 위에 천막을 치고 돌에 발을 올려놓은 뒤 일렬로 누워 잔다. 한 쪽이 비어 비바람이 몰아치는 양쪽 맨 가장자리에는 담요를 제공한다.

이게 남부군 야영 방식인데 그나마 상황이 양호할 때 얘기다. 토벌대가 온 산을 헤집고 다녀 이동 자체가 불가능할 때는 얼음구덩이에 몸을 숨긴 채 며칠을 버틴다. 얼음 위에 쪼그리고 앉아 움직이지도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식사는 생쌀이다. 그거 몇 알 씹으며 숨만 쉰다.

이동할 때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쏜살같이 달린다. 낙오되면 끝이기에 갑자기 배가 아파도 참고 달린다. 설사가 나면 바지에 그냥 싼다. 단벌이기 때문에 세탁은 한참 뒤에나 가능하다. 삶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선생님들, 장담하는데 댁들 사흘도 못 버티고 손들고 내려옵니다.

기행 후기에서는 아이들이 빨치산에 호기심을 많이 보였다고도 적고 있다. 학습 효과에 대한 뿌듯함이 물씬 풍긴다. 그러나 빨치산은 지사(志士)가 아니라 전사(戰士)다. 전사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각오를 다진 사람들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슴에 총칼을 겨누었을지도 모르는 빨치산에게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 분들의 머리는 대체 어디서부터 망가진 것일까.

다행히 세상이 변해 이제 학생 동반한 이런 이상한 기행 꿈도 못 꾼다. 그래서 그냥 자기들끼리 한다. 작년 이맘때다. 지리산에서 ‘남부군 이현상 사령관 7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행사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이현상의 최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적들의 매복에 걸려 희생당한 거지." 태연하게 ‘적들’이란다.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에는 ‘현대차 전주공장 노동전선 역사 기행’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 어르신 크게 착각하는 게 있다. 일단 이현상은 남부군 사령관으로 죽은 게 아니다. 1953년 8월 북한에서는 남로당 최고 간부들을 일제히 숙청하고 이승엽 등 10명에게 사형판결을 내린다. 이승엽의 직계인 이현상 역시 같은 운명이었으나 그는 몇 달 전 북쪽의 소환에 불응하며 지리산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이현상은 김일성 지지자인 전남도당 위원장에 의해 모든 직위를 박탈당하고 평당원으로 강등됐으며 무장 해제에 반(半)감금 상태에서 경남도당으로 이송되던 중 사살됐다.

사살 과정과 날짜는 죄다 미스터리다. 누구는 9월 17일이라 하고 또 누구는 18일이란다. 게다가 토벌대장 차일혁이 받은 보고에 따르면 이현상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맞았다고 되어있다. 매복이라며, 그런데 어떻게 근거리 사살이 가능할까. 심지어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에 의한 ‘작업’이라는 증언과 영상도 있다. 다 떠나서 아직도 빨치산 미화와 추앙이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디까지 얼마나 더 허용해야 할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자꾸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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