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공부하지 마라, 이다. 혹시 이 문장 습관적으로 대충 읽고 넘어가셨을까봐 다시 한 번 쓴다. "공부하지 마라."

억지로 키운 아이들 아니고, 주워 온 아이들도 아니며 엄마는 몸으로, 아빠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면 아이들 머리가 신통찮기 때문이다. 공부할 머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노력해봐야 얻을 것이라고는 패배감과 열등감뿐이기 때문이다. 쿨~하게 포기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키우면서 정리한 생각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지켜보다 자연스럽게 얻은 통계적 통찰이다.

2014년에 <차라리 죽지 그래>라는 책을 펴냈다. 청춘 무가치론과 노력 무용(無用)론이 테마였는데, 요약하자면 청춘은 예찬을 들을 정도로 아름답거나 가치가 있지 않고 재능 없는 노력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반응은 반반이었다. 지극히 옳은 말씀이라는 동조가 50% 그리고 노력하면 된다는, 왜 기를 꺾느냐는 반발이 50%. 솔직히 그때는 ‘감’으로 그리고 경험으로 썼다. 그냥 개인적인, 주관적인 주장이었다.

최근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다. 작년에 나온 <노력의 배신>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통계와 설문 조사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내가 썼던 책보다는 훨씬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다. 심정적으로는 흡사 우군을 만난 느낌이다.

이런 책들은 보통 통념을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력의 배신>의 첫 페이지는 이렇다. "해럴드 스티븐슨과 제임스 스티글러의 연구에 의하면 ‘열심히 노력하면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말에 미국인들은 25% 동의하지만 동양인들은 60%나 동의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문화권에서는 노력한다고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두 믿음 중 하나는 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론 내 의견은 ‘해도 안 된다’, 이다. 이어서 나오는 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심리학과 스티븐 하이네 교수의 실험이다. 실험에서 사람들은 ‘창의성’시험을 봤고 시험이 끝난 뒤 거짓 피드백을 받았다. 어떤 피드백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후속 과제를 더 잘할까. 서양인들은 ‘잘했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후속 과제를 더 열심히 했다. 동양인들은 ‘못했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후속 과제를 더 열심히 했다. 서양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타고난 재능을 믿고 인정하기 때문이며 노력의 능력을 그리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못하는 일은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양인들은 반대다. 못하는 일도 노력하면 잘 할 수 있고 못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의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이다.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망상이 현실에서 좌초한 끝에 시간 낭비와 절망과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노력 신봉 공화국의 비극이다.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인생을 망가뜨린다는 주장인데 100% 동의다. 책의 결말은 재능과 운과 환경이 인생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이며 노력은 그 축에 끼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이다(물론 끝까지 동의 안하셔도 된다).

얼마 전 중국 팀과의 탁구 대결에서 패배한 신유빈 선수는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중국 선수들은 무시무시했다. 경기를 보도한 기자는 인간이 아니라 탁구 치는 로봇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신유빈 선수, 세상에는 가끔 넘지 못하는 벽도 있답니다. 자신의 전부를 끌어내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그게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자책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절대 노력 신봉 공화국의 시민은 되지 마세요. 참고로 책에서 소개한, 스포츠 분야에서의 노력과 성공의 상관관계는 18%에 불과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