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
박인기

‘구월이 오는 소리’는 한국의 대표 가수 패티 김 노래다. 1967년에 발표됐으니 반세기 넘게 대중의 사랑을 받은, 고전 반열에 드는 노래다. 고별 무대에서 패티 김이 자신의 수많은 노래 중에 유별 사랑이 가는 노래로 지목하기도 했다.

서정의 격조가 고상하고 노랫말의 울림이 깊어 고즈넉하고 고운 고독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해마다 9월이면 필자도 낮게 읊조리며 애창하는 노래다.

‘구월이 오는 소리’는 대중가요이면서도 어떤 예지(叡智)의 전언이 담겨 있다. 무성했던 열정의 시간과 쓸쓸한 낙엽의 시간, 그 사이를 아득히 조응하는 데서 얻는 전언이다. 그러면서도 떠나가는 사랑으로 좀 아프게 침잠하는 인간적 통속의 심회가 있다. 그 모든 걸 다 듣게 하려는 데에 ‘구월이 오는 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조락 (凋落)을 예감하는 것은 계절의 감각이기도 하지만, 유한존재인 인간의 생을 조용히 응시하려는 생(生) 철학의 감수성에 닿아 있기도 하다.

여름이니 가을이니 하여, 애써 시간을 계절로 쪼개 구분하는 것에 초연하고 싶을 때도 있다. 대체로 인간이 밖으로부터 절연되어 있거나, 그래서 우울할 때 그러하다. 물리적 시간의 연속선 안에서는 계절들은 구분되지 않고 그냥 이어지는 것임에도, 사람들의 경험 안에서는 그런 이어짐의 시간도 느낌의 매듭이 지어진다. 사람들은 이 매듭의 지점을 절기나 시후(時候)로 이름을 붙인다. 그 명명(命名)의 타당함이 참으로 절묘하다.

일년내내 한결같이 여름인 열대나 한결같이 겨울이기만 한대에서도, 사람들은 극히 미묘한 느낌으로 자연 시간의 연속성을 구분하고 절후(節候)의 매듭을 만든다. 매양 같아 보이는 기온의 이어짐을 다르게 구분해 내고, 그것에 따라 생활의 습관을 지어낸다. 이것이 문화다. 이 지점이 바로 자연과 문화가 선하게 호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간의 문화란 자연의 질서를 겸손하게 읽어내는 데서 발원될 수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