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개구리 ‘미니 멈(Mini mum).’ 성체 수컷은 약 9.7㎜, 암컷은 11.3㎜에 불과하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 10배나 커 ‘제미니’ 프로젝트의 연구대상으로 낙점됐다. /코펜하겐대학
2019년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개구리 ‘미니 멈(Mini mum).’ 성체 수컷은 약 9.7㎜, 암컷은 11.3㎜에 불과하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 10배나 커 ‘제미니’ 프로젝트의 연구대상으로 낙점됐다. /코펜하겐대학

벼룩 두꺼비(flea toad)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척추동물이다. 성체의 몸길이가 단 7㎜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요 장기와 기관은 일반 두꺼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마치 평범한 두꺼비를 영화 ‘앤트맨’의 축소 장치로 몸집만 줄인 듯한 모습이다.

이처럼 기본적인 신체적 특성을 잃지 않고 진화를 통해 몸집을 줄인 초미니 척추동물은 자연계에 꽤 흔하다. 길이 1㎝의 잉어(paedocypris progenetica), 2㎝의 카멜레온(brookesia nana), 3㎝의 박쥐(bumblebee bat), 심지어 붕어보다 작은 20㎝짜리 상어(dwarf lanternshark)도 존재한다.

진화의 신은 어떻게 덩치 큰 동물의 생물학적 구성요소를 수백~수천배 소형화해 이토록 작은 몸에 모두 넣을 수 있었을까. 이 비밀을 풀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연구가 시작된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파충류학자인 마크 셰르츠 교수팀은 최근 유럽연구위원회(ERC)로부터 1100만크로네(약 21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받아 향후 5년간 ‘제미니(GEMINI, 척추동물의 소형화 유전체학)’ 프로젝트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초미니 동물들을 둘러싼 오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다. 즉 건강이나 생체 효율성의 희생 없이 특정 종의 체내 기관과 감각, 행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몸집을 줄일 수 있었던 진화의 비밀을 유전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생명체의 유전적 효율성과 유전자 개선에 대한 통찰력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셰르츠 교수는 "종이 작게 진화하면 DNA 수준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며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바꿔놓고 싶다"고 말했다.

초미니 동물의 게놈을 살펴본 이전의 몇몇 연구에 의하면 소형화 과정에서 DNA의 ‘정화’와 ‘혁신’이 발견된다. ‘정크 DNA’로 불리는 반복적인 게놈이 삭제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때 다른 유전자에도 일부 변경이 발생한다. 제미니 프로젝트는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에게 초소형 동물은 연구의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다. 대신 연구자들은 대형 동물의 연구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큰 육상 포유류인 코끼리, 가장 큰 해양 포유류인 대왕고래,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동물인 공룡 등이 그것이다.

이는 진화론을 구성하는 핵심 이론 중 하나였던 ‘코페의 법칙’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코페의 법칙에 따르면 동물들은 몸집이 커지는 쪽으로 진화한다. 덩치가 클수록 먹이 경쟁과 포식자 회피, 짝짓기 등에서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대다수 동물의 진화 결과가 이에 부합했다. 그런데 초미니 동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화석연구를 통해 작게 진화한 동물들도 다수 확인되면서 지금은 불가침의 진실이 아니라는 게 학계의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셰르츠 교수는 "동물은 무한히 커질 수 없고, 어느 시점에선 생리학적 한계에 다다른다"며 "체구가 감소하는 단계가 있어야 증가하는 추세도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셰르츠 교수는 생명체의 주요한 유전적 혁신은 오히려 소형화에서 일어난다고 본다. 10㎝의 장기를 20㎝로 키우는 것보다는 1㎝의 작은 몸속에서도 정상 작동하도록 극단적으로 소형화하는 일이 훨씬 어려운 까닭이다. 최초의 컴퓨터가 개발된지 80년이 흘렀지만 1㎝ 크기의 컴퓨터는 여전히 공상과학의 영역에 있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셰르츠 교수는 "23톤짜리 대왕고래의 모든 것을 7㎜ 패키지로 압축해낸 진화의 업적은 더없이 흥미롭고 중요한 연구주제"라며 "앞으로 제미니 프로젝트를 통해 척추동물의 소형화 과정을 제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전적으로 이해하고, 더 작아지지 않도록 하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연구팀은 이번 프로젝트가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고,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들여다보는 생명공학, 생체공학, 생물의학 등 많은 학문분야와 산업에서 그동안 잠겨 있던 문을 열어젖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껏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척추동물들. 볼펜과 비교하면 얼마나 작은 몸을 가졌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펜하겐대학
지금껏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척추동물들. 볼펜과 비교하면 얼마나 작은 몸을 가졌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펜하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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