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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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룡 플랫폼의 반칙행위를 막기 위한 플랫폼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을 결국 백지화했다. 지배적 플랫폼의 독과점 행위를 적시에 규제하고, 시장경쟁을 회복하기 위해 별도의 법을 제정하는 대신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기로 입법 방향을 최종 정리한 것이다.

당초 정부는 플랫폼법을 새로 만들고, 지배적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현행법상 위법행위를 한 지배적 사업자를 제재하는 데 2~5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 플랫폼 시장의 특성상 독과점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일단 독과점이 형성되면 경쟁질서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빠른 사건 처리로 피해 기간과 규모를 최소화한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사전 지정된 지배적 플랫폼의 자정효과도 노렸다.

하지만 업계는 물론 학계도 플랫폼법이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과잉 규제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하자 별도법 제정 백지화는 물론 사전지정 대신 법 위반이 발생하면 지배적 플랫폼임을 추정하는 사후추정으로 바꾼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이 흐지부지된 데 이어 플랫폼법마저 엎어지면서 플랫폼 규제 법제화가 한발 더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일 사후추정을 토대로 지배적 플랫폼 여부를 판단하고, 별도법 제정 대신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규제하는 내용의 입법 방향을 제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우선 중개·검색·동영상·SNS·운영체제·광고 등 6개 분야의 지배적 플랫폼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지배력을 남용한 4대 위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멀티호밍 제한은 타사 플랫폼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4대 위법행위가 명백히 의심되고, 회복 곤란한 경쟁 저해나 이용자 손해 확산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플랫폼의 행위를 일시 중지시키는 임시중지명령도 가능해진다. 아울러 법 위반 억제력 확보를 위해 과징금 상한도 기존 관련 매출액의 6%에서 8%로 상향된다. 지배적 플랫폼으로 사후 추정된 기업은 경쟁 제한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배적 플랫폼을 당초 추진했던 사전지정 방식이 아닌 사후추정 방식으로 규제한다는 방침이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사전지정 방식은 매출액·점유율·이용자 수 등을 고려해 지배적 플랫폼을 미리 정해 공표하고, 관련법 위반에 대해 처벌하는 것이다. 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사후추정 방식은 실태조사를 통해 매출액과 점유율 등을 파악한 뒤 법 위반행위가 발생하면 지배적 플랫폼에 해당하는지 판단해 처벌하는 구조다. 쉽게 말해 법 위반행위가 발생하면 사후적으로 지배적 플랫폼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당초 플랫폼법 추진 목표였던 신속한 사건 처리와는 거리가 먼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사후추정 방식에서는 불법행위로 인해 지배적 플랫폼으로 지정된 기업이 불복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 신속한 사건 처리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후약방문식의 대응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지배적 플랫폼을 사후 추정하는 요건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개정안은 1개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고 이용자 수가 1000만명 이상인 경우 또는 3개 이하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85% 이상이고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인 경우를 지배적 플랫폼 지정 요건으로 정했다. 더구나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연간 매출액이 4조원 이하인 경우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지난해 매출액을 기준으로 개정안에 담긴 사후추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은 구글, 애플, 네이버, 카카오 정도로 분석된다. 유력 플랫폼인 ‘네카라쿠배당토’, 즉 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토스 중에서도 두 곳만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제외한 다른 플랫폼 역시 자사 우대나 최혜대우 요구 등 불공정 행위 의심 정황이 다수 적발되고 있는 만큼 제재 대상을 좀 더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 플랫폼과의 역차별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해외에 본사를 둔 플랫폼이 매출액 등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실효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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