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전경우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사격 10m 공기권총 은메달을 획득한 김예지(32·임실군청)가 연예계에 진출키로 했다. 그녀는 올림픽에서 특유의 시크한 표정으로 세계 언론으로부터 주목받았다. 미국의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이자 엑스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도 당장 액션 영화에 출연해도 되겠다고 했다. 따로 연기를 할 필요조차 없겠다며 극찬했다.

김예지는 올림픽이 끝난 직후, 자신은 운동선수이며 영화 출연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광고도 찍겠다고 했다. 그러한 활동이  비인기 종목인 사격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훈련과 경기에 지장 없는 선에서 할 것이라고 단서를 붙였다.
그녀 말대로, 올림픽 메달을 따도 잠시 반짝할 뿐 얼마 지나면 이름이 잊힐 것이다. 운동만으로 기록을 내고 사격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연예 활동을 하게 되면 사격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격을 기억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할 만하다.

그녀의 바람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걱정도 앞선다. 영화나 방송에 출연하다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미디어는 진심으로 선수 김예지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시청률과 광고의 효과를 생각할 뿐이다. 시청률과 광고에 효과가 없다는 게 확실해지는 순간, 바로 버리고 만다.

김예지는 4년 후 열리는 LA 올림픽에도 나설 계획이다. 훈련과 경기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미디어는 그녀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훈련과 경기에 지장이 있거나 없는 것은 선수의 몫이지, 미디어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축구선수 조규성이 그랬다. 그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빚어낸 최고의 스타였다. 무서운 골 결정력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에 앞장섰다. 큰 인기를 얻었고 스타가 됐다. 방송과 광고에 출연하며 주가를 드높였다. 하지만 2024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실망을 안겼다. 팬들은, 그가 연예 활동을 하느라 본업인 축구에 소홀했다고 비난했다. 머리띠를 조롱하기도 했다.

연예와 스포츠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스포츠 선수가 방송 예능프로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스포츠 스타들이 방송에 나와 웃고 떠들며, 논다. 열심히 먹거나 연예인들과 어울려 게임을 한다. 입담을 뽐내기도 한다. 스포츠를 콘텐츠로 삼은 프로에서는 전문가다운 면모도 과시한다. 스포츠와 선수가 예능프로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운동선수에게 연예 활동은 매력적이다. 운동밖에 모르고 살아온 대부분의 선수들은 운동을 그만 두고 나면, 그 이후의 삶이 고민될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선수로 길러지는 엘리트 스포츠 정책 탓에 운동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 많은 나라에서, 취미 삼아 운동을 하다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 나가고, 운동을 그만 둔 뒤에는 의사 등 본업에 종사한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씨름선수였던 강호동이 연예인으로 변신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다. 천하장사였던 이만기도 그렇다. 하지만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헛물만 켜고 돌아섰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도 어렵지만, 연예 활동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어린 아이들은 좋은 장난감이 나타나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놓아버린다. 미디어도 더 매력적인 대상이 등장하면, 바로 교체해 버린다. 인정사정, 그런 것 없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소모품을 찾는다. 쓰고 버리기를,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가 소모품 신세는 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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