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
김용식

한동훈, 이재명 양당의 대표가 25일 공식 회담을 하기로 했다. 민생에 관한 논의를 하겠다는데, ‘지구당 부활론’ 역시 의제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 이전부터 폐지된 지구당을 부활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대권이 목표인 두 대표가 지역구에 자기 사람을 완전하게 내려 꽂을 수 있는 적기(適期)이기에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지구당이란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로 설치된 정당 조직을 의미한다. 과거 각 지구당위원장은 당에서 내려주는 지원금으로 지구당에 유급 직원을 고용하고, 후원회를 결성해 정치 자금을 모금하며 지역 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4년, 현 서울시장인 당시 오세훈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의 원인을 없애겠다며,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지구당은 폐지됐다.

지구당이 폐지되며 현행법상 국회의원이 아닌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지역구에서 조직을 자유롭게 운영하거나 후원회 구성을 할 수 없게 됐다. 지역 내에서 현역의원과 경쟁하며 정치 기반을 다지는 데 큰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 보면 ‘지구당 부활’은 부유한 가정이거나 본업으로 막대한 수익이 있는 이들만 정치 활동을 하는 불평등을 해소할 긍정적인 방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구당 부활이 젊은 정치 신인들에게도 유리한 제도일까? 오히려 부활한 지구당이 기존 정치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는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정치적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는 50~60대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현 상황에, 과거 형태의 지구당이 부활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하게 지역 내 정치 카르텔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젊은 정치 신인들이 기존 정치 구조에 도전조차 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더욱이 과거 지구당이 폐지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역 토호 세력과의 밀착된 관계에서 비롯된 불법 정치자금의 유입이었다. 이런 예측 가능한 부정적 측면에 대해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급하다고 과거 지구당을 그대로 부활시킨다면, 지역 정치마저 특정 세력에 의해 장악, 오염되는 막장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다.

결국 ‘과거의 지구당’ 부활은 정치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실질적으로는 특정 정치 세력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필자는 30대 초중반 두 지역에서 당협위원장을 역임했기에 지구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지구당 부활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숙의에 숙의를 거듭해 더 나은 버전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20년 전 부작용을 알고 없앤 약재를 지금에 와서 그대로 달여 먹는 바보는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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