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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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 그렇게 다부진 생각으로 입당하게 됐다." 2024년 1월 8일 민주당 소속이던 이상민 의원이 국민의힘에 합류하며 한 말이다. 박찬대·정청래·서영교 등등 이재명 대표에게 아부하며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는 이들이 대부분인 민주당에서 꾸준히 소신발언을 해온 이상민은 분명 귀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의 정치이력을 보면 그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게 정말 소신에서 나온 선택인지 의문스럽다. 그가 처음 의원 배지를 단 건 2004년, 당시 이상민의 소속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타파한다며 만든 열린우리당이었다. 총선에서 152석을 획득한 열린우리당은 임기말로 갈수록 노통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위기감을 느꼈고, 결국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합쳐져 통합민주당이 된다.

문제는 이상민이 공천서 탈락했다는 것, 그가 맞은 첫 번째 위기다. 하지만 이상민은 자유선진당으로 당적을 바꿔 재선된다.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등이 만든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을 근거지로 삼았고, 2008년 선거에서도 충청권 바람을 일으키며 18석을 획득했으니, 대전 유성이 지역구인 이상민에겐 이 선택이 신의 한 수였다. 물론 좌파인 이상민에게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은 맞지 않는 옷이었지만, 뭐 어떤가. 당선만 되면 되는데.

하지만 4년 뒤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온다. 자유선진당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면서 이대로 가면 총선에서 참패한다는 추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가장 먼저 자유선진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으로 간 이가 바로 이상민, 그 뒤 몇 명이 그의 뒤를 이어 탈당하면서 당 분위기가 완전히 망가졌으니, 자유선진당 몰락의 원흉이 이상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유성의 민주당 당원협의회마저 ‘파렴치한 철새정치인’이라며 그의 복당을 반대했지만, 이상민은 민주당 의총에 나가 "당에서 내쫓지 마시고 따뜻하게 받아들여 달라"며 납작 엎드린 끝에 복당에 성공했고, 심지어 유성에 단수 공천돼 당선되기까지 한다!

이제 3선의 중진의원이 된 이상민,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는 분구가 된 ‘유성을’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두 차례 더 당선돼 5선 의원이 되는데,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세 번째 위기가 찾아온다. 대장동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이 자신의 방탄을 위해 반대파를 공천에서 배제할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용진을 비롯한 비명계들은 대부분 공천을 받지 못했으니, 각종 방송에 나가 이재명을 비판했던 이상민이 공천받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여기서 이상민은 거취를 고민했을 것이다. 박용진과 임종석이 그랬던 것처럼 공천 탈락을 받아들이고 당에 남거나, 김종민과 조응천처럼 탈당해 군소정당을 만들거나, 그것도 아니면 불출마하거나.

하지만 이상민의 선택은 놀랍게도 민주당 탈당 후 국민의힘 입당이었다. 좌파 정치인이 보수정당으로 갈아탔으니 2008년의 선택을 되풀이한 셈. 그런 그를 한동훈 위원장은 따뜻이 맞아줬고, 유성을에 단수공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KAIST 출신인 민주당 황정아에게 59.76% vs 37.19%, 2만 3000표 차이로 낙선한 것이다. "충청권, 중부권에서 총선 승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그의 포부는 물거품이 됐다.

희한한 것은 선거 패배 이후, 5선씩이나 했던 이가 정치 신인에게 졌다면 부끄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져야 할 텐데, 이상민에겐 그런 게 전혀 없는 듯하다. 온갖 방송에 나가 대통령과 여당을 비난하고 있잖은가? 지난 16일엔 총선 패배가 "대통령이 막 우격다짐으로 국민들이 싫어하는 걸 그냥 밀어붙여서 본때를 보여준 것" "대통령은 국민 앞에 무릎을 꿇으셔야 한다"고 하더니, 18일엔 "김건희 여사 무슨 백 사건도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 "대통령 부인이 인사나 정무에 개입을 한다, 그런 소문이 나지 않게끔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4월 25일에는 한동훈 전 위원장을 가리켜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났는데 곧바로 다음 당 대표 선거에 나간다고 하면 너무 비상식"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누가 보면 총선 출마자가 아니라 정치평론가로 착각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민주당에 오래 있으면서 반성 능력은 퇴화되고 남 탓하는 것만 발달한 모양이다. 그에게 덕담 한마디, "철새 이상민 씨, 그동안 님이 당선된 게 님 능력입니까,아니면 정당 덕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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