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6호 태풍 ‘카눈’에 의한 폭우로 피해가 발생한 북한 강원도 안변군 오계리 일대를 돌아보며 "전적으로 이 지역 농업지도기관들과 당 조직들의 심히 만성화되고 무책임한 사업태도 때문"이라며 당 일군들을 질타하는 김정은과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 김정은 초기 집권 시기인 2013년 세계식량계획(WFP)는 북한 전역의 87개 가정을 방문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의 80%가 영양 부족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
작년 여름, 6호 태풍 ‘카눈’에 의한 폭우로 피해가 발생한 북한 강원도 안변군 오계리 일대를 돌아보며 "전적으로 이 지역 농업지도기관들과 당 조직들의 심히 만성화되고 무책임한 사업태도 때문"이라며 당 일군들을 질타하는 김정은과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 김정은 초기 집권 시기인 2013년 세계식량계획(WFP)는 북한 전역의 87개 가정을 방문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의 80%가 영양 부족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 ‘어버이’, 북한에선 김씨 일가의 우상화 작업을 위한 칭호로만 쓰인다. 걸음마 떼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벽에 걸려 있는 ‘위대한 어버이 수령’ 초상화에 머리 숙여 인사하는 관례였다. 낳아주고 키워준 어버이의 사랑을 느끼기보다 직접 얼굴도 보지 못한 어버이 수령에게 충성하라는 세뇌를 받는다. 어버이 수령을 믿고 따르면 삶이 곧 행복할 것 같은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북한의 ‘어버이’ 우상화 작업은 김일성의 시대인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주로 혁명학원 등의 원아들이나 어린이들이 김일성을 ‘아버지’ 또는 ‘어버이’로 부르다가 김일성의 권력이 절대화되면서 ‘어버이 수령’이라는 호칭이 등극한 것이다. 1961년 발표된 북한의 대표적 체제선전 노래 ‘세상에 부럼 없어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 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 없어라"

무엇보다 이 노래 가사 중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가 최근 "우리의 아버진 김정은 원수"로 바뀌었다. 김정은이 어버이로 절대화하려는 모양새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고 20대 집권을 시작한 김정은 체제가 10년을 넘겼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딱히 내세울 업적이 없는 김정은은 최근 들어 ‘어버이’와 ‘아버지’ 칭호를 내세우며 권력 공고화를 위해 다양한 연출을 시도 중이다. 이제 겨우 10살 된 딸(김주애)을 이곳저곳 대동한다거나, 어머니대회 연설 도중 눈물로 주민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또 지난해 폭우로 제방이 무너진 북한 강원도 일대에선 하얀 옷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는 등 예수와 같은 행보를 연출하고 나섰다.

‘수령제’를 내세워 절대권력을 강화하려는 김정은의 이같은 행보는 곧 북한의 내부 결속이 약화된 실상을 말해준다. 그나마 무상 배급제가 있었던 김일성 시대에선 ‘어버이’ 코스프레가 통했을지 몰라도 배고픔을 달랠 길 없는 북한 주민들에게 ‘수령제’가 세뇌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국가의 부재와 시장 경제를 경험한 장마당 세대들에겐 주체사상 통제가 더더욱 안 먹힌다. ‘공개처형’을 일삼는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아니었다면, 사실상 북한주민의 대다수는 탈출했을 것이다. 지도력이 중대한 시험대에 오른 김정은이 김정일도 이루지 못한 ‘어버이 수령’을 공식화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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