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주
손광주

9월 9일은 북한정권 수립일이다. 올해 76주년이다. 국가 3요소는 국토·국민·주권인데, 북한은 이것이 모두 망가졌다. 압록강 수해에서 보듯 자연재해 방지 인프라가 없으니 홍수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주민들은 노예 상태나 다름없다.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으니 주권도 취약하다. 북한정권은 결국 3대 세습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지난해부터 리일규 전 쿠바 주재 참사관 등이 탈북해 한국으로 오는 등 과거보다 엘리트 탈북민 입국이 다소 늘었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고위직 탈북민도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이른바 ‘정보 가치’가 많든 적든 관계없이 탈북민들이 많이 입국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통일로 가는 기초 환경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 동서독은 1949년부터 1990년 독일 통일 때까지 동독을 탈출한 탈동자(脫東者)들이 총 520여만 명이었다. 우리도 분단과 전후(戰後) 시기에 실향민· 월남민이 많았다. 남북 1천만 이산가족이라 했다.

1989년 5월 동독 주민의 대량탈출이 시작되자 34만3800명이 서독으로 탈출했다. 이듬해 1990년 1월부터 독일 통일 직전인 6월까지 23만8000명이 추가 탈출했다. 1년 동안 62만여 명이 서독으로 넘어온 것이다. 갑작스런 탈동자 급증은 서독사회에 부담이었다.

반면, 1990년대 이후 한국에 온 탈북민 수치는 완만하다. 2009년 2914명으로 최고점을 찍었고 지금까지 총 3만4000여 명이다. 입국 탈북민 숫자가 어떤 수준에 이르면 북한 세습독재정권이 흔들리면서 북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1997년 한국에 온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국제비서는 "한국에 오는 탈북민이 10만 명 정도가 되면 북한정권이 흔들릴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2012년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하자마자 극단적인 방식으로 탈북을 막은 배경도 단기간 탈북자 급증이 체제를 뒤흔들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짐작된다.

1989년 당시에 서독의 공산주의 전문가들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들은 동독의 고급기술 노동자들과 과학자·지식인·군인들의 탈출이 이어지자 비로소 ‘뭔가 심상찮다’고 생각했는데, 때는 이미 늦었다. 전체주의 체제 특성상 한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동유럽 대부분이 그랬다. 특히 동독 탈출자들은 서독에 친척·이산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동독 탈출 후 서독을 선택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여성/함경도·양강도/고졸 출신이 대략 80%다. 2020년 기준 대졸이 늘고(전체 26%), 평양 출신이 미세하게(6.7%) 늘었다. 탈북 동기도 90년대 중반에는 경제적 이유가 압도적이었으나 정치적 자유·자녀 교육 등이 늘었다. 당·행정 일꾼, 군인·교원·보위·보안사법·검찰 등 체제유지 직업군도 2000년 이전(3.8%)보다 2020년 8.8%로 늘었다.

지금까지 한국에 온 최고위급 탈북민은 황장엽 당중앙위원회 국제비서와 마지막까지 비공개 인물로 활동한 제2경제위원회(군수경제) 고위급 과학자 출신 이준익(가명) 선생 정도로 꼽힌다. 이들은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이외에 당 출신 인사를 비롯해 군·보위부·내각 출신이 공개 또는 비공개로 활동해왔다. 아직까지는 탈북민의 계층 분포에서 북한 체제의 의미 있는 변화의 기미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전체주의 체제는 우리의 관점으로 알기 어려운 대목이 분명히 존재한다. 최근 압록강 수해로 자강도에서 3500명~40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김정은이 간부 20~30명을 한꺼번에 총살했다고 한다. 북한정권이 민심 이반을 조기에 틀어막으려는 과도한 조치로 보인다.

앞으로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당·행정·보위·보안·군인·교원 등 체제유지 직업군과 군수공업 분야의 고급 기술노동자·과학자, 핵·미사일 관련 기술자, 컴퓨터·IT 관련자, 무기·석유 수출입 종사자들의 탈북 가능성이다. 이들 직업군의 탈북 현상이 일정 기간 균질하게 나타날 경우, 안보 부서의 비상한 관찰이 필요하다. 정권 수립 이후 처음으로 수령이 ‘민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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