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형
이충형

중국은 미국과 대적하기 위해 끊임없이 ‘집 싸움’을 하며 자신의 세력을 넓히려 하고 있다. 집 싸움의 주요 목표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그리고 동남아시아다. 하지만 중국의 동남아시아 공략은 발목이 잡히곤 한다. 이 지역 국가들과의 영해 분쟁 때문이다.

지난 8월 31일에도 이 나라들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南沙)군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필리핀명 칼라얀군도)에서 또다시 충돌했다. 스프래틀리군도 내 사비나 암초(중국명 셴빈자오(仙賓礁)·필리핀명 에스코다 암초) 인근 해역 한 곳에서만 8월 19일 이후 벌써 네 번째 충돌이다.

중국 해경은 "필리핀 9701 선박은 비전문적이고 위험한 방식으로, 정상적인 법집행 행위를 하던 5205 해경선을 고의로 충돌했다"며 "이번 충돌의 책임은 전적으로 필리핀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필리핀을 향해 "현실을 직시하고 환상을 버리고 스스로 철수하는 것이 유일한 올바른 방법"이라며 "상황을 오판하거나 사태를 악화시킨다면 모든 책임은 필리핀이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셴빈자오를 포함한 난사군도와 그 인접 해역에 대해 논쟁의 여지 없는 주권을 갖고 있다"고 못박았다. 필리핀 해경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해경 선박이 충돌 관련 규정을 무시하고 위험한 기동을 강행해 필리핀 해경 선박이 피해를 입었다고 반박했다.

필리핀 해경 대변인이 공개한 영상에는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해경선의 옆구리 등 세 곳을 들이받는 장면이 담겼다. 중국 해경선 3척, 중국 해군 함정 2척, 중국 해상민병대 선박 5척 등 중국 측 선박 10척이 테레사 마그바누아호를 둘러싼 장면도 촬영됐다. 중국과 필리핀 해경은 지난 19일에도 사비나 암초 인근에서 ‘선박 대 선박’으로 충돌했다, 25일과 26일에도 같은 곳에서 또다시 부딪쳤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약 90%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베트남·대만·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와 마찰을 빚고 있다. 사비나 암초는 필리핀 서부 팔라완섬에서 서북쪽으로 약 200㎞ 떨어져 있다. 이곳은 필리핀과 중국의 최대 분쟁 해역인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 있는 필리핀군 병력에 물자를 보급하는 필리핀 선박들의 집결지이기도 하다.

그간 중국은 사비나 암초를 선점한 뒤 자국 해경 선박을 대거 배치했으며, 국제 사회의 눈을 피해 사비나 암초를 인공섬으로 만들기 위해 매립 작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은 지난 5월 중순 중국의 사비나 암초 인공섬 건설 활동을 감시한다면서 테레사 마그바누아호를 이 암초에 파견했다. 이 선박은 지금까지 다른 필리핀 해경선의 물자 보급을 받으면서 석 달 넘게 현지에 머무르고 있다.

중국은 필리핀이 1999년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노후 군함 시에라 마드레함을 좌초시킨 뒤 이를 이용해 병력을 주둔해온 것과 같은 시도를 사비나 암초에서도 하려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97m 길이의 테레사 마그바누아호는 2022년 필리핀에 인도된 최신 대형 해경선이다.

이 지역에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피를 튀기며 영역 싸움을 하는 이유는 하나, 자원 때문이다. 중국은 산업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지하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그 의존의 절대다수는 중동에서 나오고 동남아시아의 말라카 해협을 거쳐야 한다. 만약 이 해역을 미국 또는 중국에 적대적인 동남아 국가가 봉쇄한다면 중국은 말라 죽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 해역 자체에 매장된 지하자원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필리핀은 사비나 암초 부근 해저에 필리핀 에너지 수요를 최대 75년간 충족시킬 수 있는 규모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1990년대 말 동남아 외환위기 때 자신이 동남아 국가들에 가지고 있던 채권을 회수하지 않는 자비를 베풀어 이 국가들의 환심을 샀다. 하지만 자원 경쟁 앞에서는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정을 잘 아는 미국은 동남아 국가들을 부채질하며 중국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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