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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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금값이 트로이온스당 2500달러를 넘어서면서 개당 금괴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100만 달러(약 13억3300만원)를 돌파한 것이다.

금, 은, 백금 등 귀금속에 쓰이는 단위인 트로이온스는 31.1034768g으로 일반적인 온스보다 9.7% 더 무겁다. 통상 각국 중앙은행이 금 현물을 보유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준 금괴는 400트로이온스로 제작된다.

최근 금값이 뛰고 있는 것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 등으로 전통적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국 투자자들이 증시와 부동산 시장 침체의 헷지 차원에서 금을 사들이고 있는 것, 그리고 금 소비 대국 인도의 결혼 시즌에 따른 수요 확대도 금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9월로 예상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금값을 더욱 밀어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값은 미국 국채를 필두로 한 채권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채권에 투자하면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로 채권 수익률이 떨어지면 금 투자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주요 금 생산국의 생산량 감소도 공급 측면에서 금값 상승의 요인이 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 2022년 110톤의 금을 생산했는데, 이는 2000년의 430톤에 비해 74.4% 감소한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금의 총량은 24만4000톤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18만7000톤가량이 채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금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이면서 국내 은행권에서도 골드뱅킹 계좌 수가 급증하고 있다. 골드뱅킹은 은행에서 금 통장을 만들어 입금하면 은행이 입금액에 해당하는 금을 국제 시세와 환율에 맞춰 적립하는 상품이다.

20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가격은 트로이온스당 2541.30달러로 전장보다 0.1% 상승했다. 앞서 지난 16일 금 선물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82% 오른 2537.80달러를 기록했다. 금 현물가격 역시 같은 날 사상 처음으로 2500달러를 넘어 2508.01달러에 거래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금값이 트로이온스당 2500달러를 넘어서면서 금괴 가격도 처음으로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전했다.

금값을 끌어올린 ‘트리거’는 지정학적 리스크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이란이 개입할 수 있는 잠재적 불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안전자산인 금 수요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기침체 우려도 금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약세를 보이자 대안으로 금을 ‘사재기’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씨티그룹에 따르면 올해 중국에서 수입하는 금은 1750톤가량으로 지난해보다 1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2020년과 비교하면 무려 8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는 중앙정부의 투자 목적이나 인민은행의 금 보유량 확대를 제외한 것으로 개인 소비 및 투자, 산업용으로 수입되는 물량만 집계한 것이다.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은 지난 2021년부터 미국 국채를 내다 파는 대신 금 수입을 늘려왔는데, 지난해부터 수입 물량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중국의 금 수입 물량이 올해 전 세계 채굴량의 47%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은 상태다. ‘싹쓸이’인 셈이다.

인도인들의 소비 급증도 금값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인도 정부의 새 예산안에는 금 수입 관세 인하가 반영돼 있다. 이코노믹타임스에 따르면 인도의 금 수입 관세율은 종전의 15%에서 6%로 인하됐다. 특히 인도의 여름철은 결혼 성수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 연준의 9월 기준금리 인하가 현실화되면 오르는 금값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금값이 몇 달 내 트로이온스당 2600달러선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골드뱅킹을 취급하는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골드뱅킹 합산 계좌 수는 26만1977좌다. 지난 1월의 25만2332좌와 비교해 1만좌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이는 올해 금값이 오르며 금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골드뱅킹 수요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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