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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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중도 하차 시나리오를 비롯해 남은 4개월 동안의 표심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세계 각국은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인 ‘트럼프노믹스’는 반세계화, 반중국, 반친환경으로 요약된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보호무역주의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무역수지 적자를 자국의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위협하는 ‘약탈’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맹국 무임승차도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되려면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해야 하는 변수가 있다. 하지만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주요국 경제에는 상당한 충격파가 되는 것은 물론 한국 경제에도 타격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는 역대 최대치를 경신 중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프렌드쇼어링, 즉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올라타 대미 의존도를 높인 우리나라로서는 대규모 무역흑자가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노믹스가 초래할 물가 상승, 즉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도 정책당국의 거시경제 운영에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금리 인하에 시동을 걸더라도 트럼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추가적인 금리 인하 스텝에 조정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미 무역흑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1% 증가한 287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기간 대미 무역흑자는 우리나라 전체 무역흑자 231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대미 무역흑자는 500억 달러대에 달해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의 444억 달러를 넘어설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9년 114억 달러, 2020년 166억 달러, 2021년 227억 달러, 2022년 280억 달러, 2023년 444억 달러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아울러 미국은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흑자국이 됐다. 대미 무역흑자 확대는 우리나라의 대미 수입에 큰 변화가 없는데, 대미 수출이 급속하게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뚜렷해지고 있다. 월간 대미 수출은 지난해 12월 20여년 만에 대중 수출을 앞질렀고, 이후에도 미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대미 수출은 지난해보다 16.8% 증가한 643억 달러로 대중 수출 634억 달러보다 많다.

미국의 무역적자국에서 우리나라 순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것은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미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10대 무역적자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9위(439억 달러·이하 미국 기준)로 10위권에 들었고, 지난해에는 8위(514억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1∼5월 우리나라는 다시 캐나다를 제치고 7위(285억 달러)에 올랐다. 1∼6위는 중국, 멕시코,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일본이다.

무엇보다 트럼프노믹스의 직접적인 리스크는 고율 관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산 제품에 60~100%의 관세를 부과하고, 평균 3%대인 관세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보편적 기본관세’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국이 트럼프 캠프의 공약대로 보편적 기본관세 10%를 우리나라에도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이 152억 달러(약 21조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가 역대급으로 불어나는 상황이 되레 무역 압박의 빌미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특히 반도체칩과 과학법(칩스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2차전지 등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수출 상승세를 기반으로 내수 부문의 온기 확산에 주력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칫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

트럼프노믹스가 초래할 물가 상승도 한국 경제에는 악재가 될 전망이다. 감세 정책으로 미국의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고율 관세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으로 꼽히는 금의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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